얼마 전 비정규직 강사 생활로 삶을 이어나가시는 선배 홈페이지에 백분 토론에 왜 자꾸 이상한 양반을 영입하냐는 짧은 덧글을 달자 이러한 덧글이 돌아왔습니다.

또라이들이 나와야 보는사람 재밌지. 백분토론의 개콘화.. ㅎ.

마침 한국에 와서 우연찮게 처음으로 보게 된 프로그램이 무려 '주열사' 주성영이 나오는 백분토론이었습니다. 보면서 웃기기는 하던데 그 이상으로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사실 저는 몇 년 전 방송국 PD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도전하고픈 영역은 infortainment였지요. 영어에 정신나간 나라에서 살아 온 분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정보 + 오락의 합성어입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매번 '방송의 공영화'를 추구하고 '지나친 상업화'를 견제한다는 이유로 요 몇 년 새 계속해서 등장, 발전하고 있습니다. '스펀지'로 대표되는 프로그램들이 그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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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 생각에 이러한 프로그램은 몇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생활 공간에 한정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활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별반 쓸모 없는 정보가 대부분이죠. '오락'을 위한 정보이지, '생활'을 위한 정보성은 약한 것입니다. 전혀 사회적 이슈로 나아가지 못함은 물론입니다. 때문에 사실상 한국은 뉴스는 항상 무겁게만 읽혀 왔죠. 가뜩이나 우울한 뉴스만 전하는 판에 말입니다.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시사적 부문을 다룬 infortainment가 공중파로 진출하고는 있습니다.'헤딩라인 뉴스' 가 적게나마 기존 시사 프로그램의 한 꼭지 정도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최근은 아예 '명랑 히어로'라는 오락성 시사 프로그램도 생겼더군요. 이 프로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적어도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사회적 이슈를 가까이 할 수 있고 가볍게 다룰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개그맨들에게 정치인, 기자 급의 식견과 안목을 요구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이들은 가교 역할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안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비웃을 수 있음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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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분 토론'은 이들과 전혀 다른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토론이 무조건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 모든 프로그램의 목적은 분명하고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명랑 히어로'는 어차피 '정보 전달'이 주 목적이라 하기 힘든 프로그램입니다. 또한 '논쟁'을 통해 어느 쪽이 올바르냐를 가릴 자리 역시 아닙니다. 아무도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지도 않고요. 때문에 설사 이 곳에서의 논쟁이 개판이 되어도 사람들은 즐거워하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백분 토론이 이들 프로와 같아진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곳에서는 적어도 이름 값은 쟁쟁한 사람들이 모이며 분명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토론이 개판이 된다면 그것은 (양 쪽이 삽질한다면) 정치혐오감을 낳거나 (한 쪽이 삽질한다면) 편파적인 의견을 생산할 뿐입니다. 결국 백분 토론은 좋은 토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백분 토론에 대해 전혀 그러한 의무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프로그램 소개부터 기본적인 철학 부재를 드러냅니다. '명랑 히어로'와의 비교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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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확대해서 보세요;;;

백분 토론의 프로그램 소개를 보면 이게 당최 토론 프로그램인지 손석희 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을 띄우기 위해 특정 인물에 의존함은 흔한 현상이지만 지금의 손석희 의존은 지나칩니다. 덤으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대담하고 젊은 토론'은 대체 무엇입니까? 똘추들 영입하면 '대담한 토론'이고 방청객이 젊으면 '젊은 토론'입니까? 이에 반해 명랑 히어로는 유치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뚜렷이 표명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가치 없이도 좋은 실적을 내는 기업이 있듯 백분 토론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전 그렇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앞서 밝혔듯 백분 토론은 좋은 토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인물 섭외가 필수입니다. 아마 여기에 찬성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백분 토론 PD의 말을 인용하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힘든 건?

=철칙을 지키는 일이다. 가장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 선 사람을 섭외하는 게 철칙이다. 요즘엔 여론이 좋지 않으니까 한나라당 의원들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다. 공무원들은 더 힘들고…. ‘미국산 쇠고기 안전한가’ 편에서는 방송 당일 오후까지 정부 쪽 참석자들이 결정되지 않았다. 애원도 하고 협박도 한다. (웃음) 국민들한테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하고 편집 안 하니 왜곡도 없다고 설득도 한다. 우리가 “이번만 부탁드린다” 그러면 저쪽에서는 “우리도 이번만 사양한다” 그런다. 섭외 징크스가 있는데, 섭외가 쉽게 끝나면 반드시 탈이 난다. 방송 전날 패널이 안 나오겠다고 틀어버린다든지…. 지식인층은 방송을 저잣거리 말싸움으로 여겨 잘 안 나오려고 하는 것 같다. 토론하고 설득하는 건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논란을 제기한 당사자인데도 안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푸른 색 부분이 PD 분의 생각 같은데 이게 말마따나 쉬운 일 아닙니다. 우선 지식인들 입장에서 방송 출연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가 단지 자기 보신만큼은 아닙니다. 도무지 방송에서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요. 우선 시간 제약이란 게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무슨 말 좀 하려고 하면 시간 없는 게 일상 다반사인데 실제 정책은 단 1~2분만에 브리핑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이런 복잡한 자료, 근거를 간단하게 브리핑해 버리면 역풍이 무섭습니다. '광우병은 영국과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위험성이 극도로 낮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겠습니까? 더군다나 시간 제약은 근거 100개와 근거 10개가 사실상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됨도 염두해야 합니다. 때문에 논리를 놓고 싸우기 위해서는 각 패널에게 긴 시간을 주며 자기 의견을 확실하게 밝힐 기회를 주어야 하겠지만 백분 토론은 이와 너무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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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대로 된 이야기도 안 나오는지라 끊는 입장도 짜증나긴 하겠다만...

이러한 이유로 좋은 토론의 조건은 '더 논리적인 쪽'이 승리해야 하는데 이게 도통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차라리 '구술 능력'과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결국 토론에 나서는 이들은 두 부류가 됩니다. 물론 적당히 섭외된 패널도 있으나 이들은 별로 부각되지 않죠.

1. 어느 정도 방송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 (ex. 진중권, 유시민, 변희재...)
2. 무식해서 용감한 또라이 (ex. 양민 다수...... 이명박?)

이 경우 백분 토론은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다소 시간을 들여서라도 좋은 토론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 혹은 능숙한 누군가가 또라이를 밟는 형태로 갈 것인지. 그리고 백분 토론은 항상 후자를 선택해 왔습니다. 과거 손석희가 여자도 군대 보내야 한다는 여중생(여고생인가?)을 밟고 환영 받는 그것, 전거성이 꼴페미에게 모욕 받으며 자신을 합리화한 그것, 진중권이 주열사(...)를 조롱하며 칭송 받는 그것. 이런 형태의 토론이 좋은 형태인가요? 나오지 않으려는 멀쩡한 사람들 다 제끼고 또라이들 데리고 와서 바보 만들고 한 쪽으로 기울게 하는 그러한 토론이?

진중권 교수가 진거사로 무지 추앙받던데 글쎄요. 진중권이 논리성이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과연 학자들과 광우병을 논할 레벨인가요?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취합한 수준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실 브릭 소리마당과 같은 과학 관련 사이트에서도 광우병에 대해서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는 쪽이 많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상대방이 또라이이다보니 그저 밟고 사람들은 환호하죠. 좀 더 신중하게 진실에 접근해야 할 토론 자리가 정말 개콘이 되어 버립니다.

편 나누기도 문제입니다. 삼성 관련 백분 토론에서 한 패널은 자신은 삼성이 죄가 없다는 게 아니라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의 실증이 빈약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러 왔다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죠. 더군다나 때로는 문제 그 자체가 불투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로 동네 난장판 되기 딱 좋은 경우죠.

이게 단지 토론 한 번의 레벨에서 끝나겠습니까? 사람들은 단순화시켜 생각합니다. 아마 최근 광우병 덕택에 '한국 우파는 또라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었을 듯 한데 역시나 '글쎄요'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책은 우파들의 연구 결과물입니다. 그 책에 달린 주석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진중권 교수처럼 미디어 앞에 서서 방송 상황에 알맞게 논리를 전개할 자신이 없게 때문이죠.

사실 마찬가지 논리를 들이대면 '미학자'인 진중권이 계속 나오는 것도 좌파의 한계입니다. 어느 쪽 편을 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실제 상황에 깊이 파고 들어 있는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미디어에 어필할 수 있는 사람 위주로 흘러갑니다. 신해철 씨가 그렇게 나오기 싫다는데도 왜 계속 데리고 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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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신해철도 서태지 못지 않은 곱상한 외모... 를 자랑했습니다

토론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연히 토론 해야죠. 하지만 좀 좋은 토론을 보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에 정치인 혐오는 물론이고 지식인 혐오가 짙게 끼어 있지만 설마 제대로 된 소수가 없겠습니까? 그 제대로 된 소수를 가지고 어느 쪽이 더 나은 길인지, 혹은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어떤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보여 주어야 할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신해철 씨, 진중권 교수 안 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해철 씨는 몇 안 되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연예인이고 진중권 교수는 각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식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방송 미디어 체제에서 다양한 이슈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얽매어서만은 안 됩니다. 만약 이대로 백분 토론이 계속해서 나간다면 정말 위치가 어정쩡해 집니다. 명랑 히어로 등의 프로그램이 계속 등장한다면 이미 이슈 제기로의 역할은 없을테고 그나마 백분 토론을 보는 사람 상당수는 (광우병처럼 특정 이슈가 아닌 한) 이미 시사에 꽤 관심이 있습니다. 신문 좀 보고 구글 검색 몇 번 때리면 각 주장의 주요 논리들 넘쳐 납니다.

그렇다면 백분 토론은 시청자로 하여금 더 좋은 판단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라도 얻게 할 수 있어야 할텐데 제 답은 또 다시 '글쎄요' 백분 토론을 보면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긍정적 현상보다 그 역작용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덤으로 광우병 이후로 계속 볼 것 같냐면 그럴 것 같지도 않고. 싸움 구경시키고 그것을 통해 입소문 내는 것은 언론의 기본 속성이자 하나의 본질이지만 그럴 거라면 다른 쇼프로와 다를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람은?

=논리 대 논리가 맞붙는 게임을 보듯 즐겁게 봐달라. 시청자도 자기 편보다 다른 편 이야기에 더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토론자에 대한 인신공격 댓글은 자제해줬으면…. 그런 반응 때문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대중스타들도 사회적 발언을 적극적으로 해 제2의 신해철씨가 나와야 한다. 김구라, 김재동, 호란, 성시경씨도 토론 잘할 거 같다. 마지막으로 소통이 중요하다는데 토론 프로그램을 평일 밤 12시10분에 내보내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게임은 티비는 물론 컴퓨터에도 넘쳐 납니다. 단 좋은 토론의 기반 하의 게임을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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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촛불 시위의 한계를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찾는데 제가 보는 가장 큰 한계는 그것이 뉴스거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언론'은 jean님의 생각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바로 '주목'하게끔하는 것입니다. 언론에 주목받지 않는 사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니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아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죠.

1. 10만명이 광화문에 모였다.

2. 10만명이 사흘간 광화문에 모였다.

3. 10만명이 열흘간 광화문에 모였다.

4. 10만명이 한달간 광화문에 모였다.

5. 10만명이 50일간 광화문에 모였다.

6. 10만명이 100일간 광화문에 모였다.

위에서 언급한 단위들은 다소 의미가 있는 단위들입니다. 사흘은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인간의 사고가 대개 5단위, 월 단위, 자리 수 단위로 끊긴다는 점에서 그러하죠.

사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것은 단순히 시간의 비례 이상으로 놀라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체감하는 그 자극은 되려 감소합니다. 그리고 언론은 사람들의 그러한 시각을 반영합니다. 언론은 사람들이 크게 느끼는 의제를 다룹니다. 결국 어떠한 사건이 지속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데 반해 (즉 놀라운 일인데 반해) 반대로 사람들은 그것에서 흥미를 점점 잃어갑니다.

시위 100일은 처음 시작 당시의 주목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50일은 처음 사흘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한 달은 열흘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죠. 사람들은 새로운 더 신선한 새로운 자극을 원합니다. 지겨운 무언가에는 몰두하지 않게 되죠.

지금까지 사람들이 여기에 주목해 온 데에는 이명박 정부의 어설픈 대처가 계속해서 뉴스거리를 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이 좀 더 언론을 이해하는 현명한 정치인이었다면 대처가 비록 민감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짧고 굵직한 대응으로 일관했을 겁니다. 지금처럼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해서 빌미거리를 제공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이명박의 사소한 대응들은 계속해서 의제를 제공하고 이에 의해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듭니다. 그리고 사람이 몰려들었다는 이유로 또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순환됨이 지금까지 촛불 시위가 뉴스거리가 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죠.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합니다. 비록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정도는 아니지만 이명박의 이번 처사는 행정부의 수장으로 할 일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각을 일신했고 추가협상을 했죠. 앞으로의 방향 역시 대운하와 민영화에서 발을 빼는 등 민심을 반영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의 백기가 하나의 레토릭적 성격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레토릭이라기에는 양보 범위가 꽤 컸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잦은 내각 교체가 있었는데 사실 이들이라고 정책적인 큰 의미를 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정부가 그간 과오를 인정하고 민심을 수용하겠다는 하나의 간접 선언일 따름이죠. 이번 일은 그러한 간접 선언 치고는 작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차피 이번 시위가 이명박 정부와 국민간의 밀고 당기기 싸움이라고 볼 때 reaction이 필요한 쪽은 정부 뿐만이 아닙니다. 국민들 역시 일정 수준의 반응이 필요하죠. 그러나 지금 집회는 산발적이고 대책 위원회가 있다고는 해도 대표 단체로 보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때문에 '촛불'은 답이 없습니다. 답을 낼 수도 없습니다. 또한 국민 요구를 완전히 수용하지 않는 한 그것이 원천적으로 꺼질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물러나라, 혹은 계속하라는 주문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표론'을 둘러 싼 논란처럼 말이죠.

그러나 저는 촛불 시위가 전술적으로 더 이상 유효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국민 여론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을 고수한다면 '당기기'가 없는 일방적인 '밀기'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당기기' 없는 '밀기'는 보는 사람들에게 식상하게 느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뭔가 빠르게 다른 아젠다를 생산하지 않고서는 주목 대상에서 밀려나기 쉽상이죠.

축구 경기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과만이 아닌 내용이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결과만에 관심이 있다면 어느 채널도 중계해주지 않겠죠. 지금까지는 이명박이라는 좋은 수비수가 게임을 재미있게 해 주었지만 그 수비수가 떠난 지금 다른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는 되려 촛불집회 자체가 이후 가볍게 비추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드는군요.

사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당 정치가 고도로 효율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에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성은 차치하더라도 행위자들의 개성이 살아 있고 그것이 집적되어 그럴듯한 스토리를 형성하기도 좋기 때문이죠. 즉 큰 비용 없이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끄는 쇼가 가능합니다. 지금 촛불이 언제까지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단지 수가 많고 기간이 길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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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1. 사실 그는 민노당의 비밀 당원이다.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자 한나라당에 잠입했다.

가설 2. 사실 그는 다함께이다. 하도 씹히는 게 지겹다 보니 극단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가설 3. 사실 그는 사회당의 비밀 당원이다. 당 없애고 만들기도 귀찮다보니 이명박을 특별 파견했다.

가설 4. 사실 그는 주사파이다. 민노당 분당으로 지지기반을 잃자 반미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등장했다.

가설 5. 사실 그는 평화주의자이다. 대미 굴욕 협상시 북한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삼겠다는 이면계약을 했다.

가설 6. 사실 그는 노빠다. 어찌 되었든 지금 그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노무현이다.

가설 7. 사실 그는 그냥 제정신이 아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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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고 나서 정보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없고 PC방의 접속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전에는 이런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신문을 보았는데 이제는 죄다 RSS 구독에만 의존합니다. 실행해보니 RSS reader를 사용한 신문구독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직접 신문사 홈페이지 방문하는 것보다 이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1. 제목과 일부 내용만 나열되기에 빠르게 '중요하지 않은 기사'를 무시할 수 있다.
2. 헤드라인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고 모든 제목을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RSS 구독의 문제는 수집되는 기사의 범위가 완전히 사용자에 적합한 형태로 한정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즉 사용자에 적합한 세분화가 없이는 되려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제가 중국 관련 정보만을 얻기 원한다고 할 때 신문사 홈페이지에 들어간다면 대개 '국제' -> '중국' 을 클릭함으로 이 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RSS 제공이 단지 '국제면 전체기사'로만 한정되어 있다면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이점을 상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feed43이나 feedity (사용법)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강제 수집이라는 게 성능의 한계도 있고 귀찮기에 결국 RSS reader를 통한 신문 구독이 원활히 이루어지려면 해당 신문사의 RSS 서비스가 세분화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문사의 RSS 정책은 매우 형식적입니다. 문화관광부 뉴미디어 산업팀에서 대충 정리한다고 했는데 공무원들이 다들 그렇듯 완전 제맘대로인고로 다시금 정리해 보겠습니다.

신문사 총 수  특징
한겨레 17 각 섹션별 기사 및 인기 기사 제공
중앙 14 각 섹션별 기사 및 인기 기사 제공
경향 16 각 섹션별 기사 및 인기 기사 제공
동아 19 각 섹션별 기사 및 인기 기사 제공
오마이 31 각 섹션별 기사, 지역별 기사, 오마이뉴스E 제공
미디어오늘 28 각 섹션별 기사 및 일부 특집 기사 제공
한국 3 검색 RSS 제공 (도움 전혀 안 됨)

보다시피 한국일보가 허접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 비슷합니다. 섹션별로 제공하는 정도죠. 미디어오늘의 특집 기사 제공은 의도는 좋지만 특집이라는 게 일정 기간을 넘으면 더 이상 발행되지 않음을 고려할 때 사용자로 하여금 입력 후 삭제를 하는 귀찮음을 안겨 줍니다. 더군다나 그 RSS가 발행될지 안 될지의 여부도 알기 힘들고요. 한국일보는 검색어를 통한 RSS를 제공하지만 넘치는 적절한 필터 없는 검색 수집은 되려 시간낭비라고 봅니다. 오마이뉴스E는 매우 흥미로운 시도이지만 (특히 인기 편집노트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풀이 크지 않아서인지, 오마이뉴스의 성향에 맞는 분들만 올리는 한계 때문인지 그다지 다양한 내용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천편일률적 RSS를 넘은 신문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독재정부의 귀염둥이 조선일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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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두려우신 방우영 회장님의 자서전이 절찬리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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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이명박의 굽실굽실 본능은 죽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RSS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먼저 뉴스, 엔터테인먼트, 뉴스플러스, 영문 조선의 4개 영역 대분류 후 그것을 총 32개 영역으로 소분류했습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소분류 내에서도 다시금 분류를 해 정말 원하는 기사만을 수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제 문제 중 중국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 해당 기사만 수집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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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읽고 싶은 칼럼이 하나도 없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 RSS의 장점은 무진장 많습니다. 예로 조선일보는 '인기기사'마저 섹션별로 제공하는데 주요 기사만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은 서비스입니다. 또한 블로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주요 RSS reader별 추가 버튼까지도 친절하게 설치해 두었고요. 게다가 대부분의 신문사 계열 잡지사들이 단독 RSS를 발행하지 않는 데 반해 조선일보는 '주간조선'의 RSS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무려 '위젯'까지도 제공한다는 겁니다. 위젯 설정도 매우 감각적이고 간단합니다. 한겨레도 '하니티커'라고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보면 좀 안쓰럽습니다. 직접 가서 보세요. 얼마나 차이가 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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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역시 앞서가는 언론사는 뭔가 다르구나!

저라고 조선일보를 좋아하지야 않습니다만 확실히 조선일보는 '사용자 친화적'이라는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신문사입니다. 기사 질이 높은 거야 돈이 많으니 그렇다치고 RSS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독자 친화적입니다. 홈페이지부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고요. 사실 한국에 RSS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그런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사실 RSS 제공은 신문사 입장에서는 약간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사 홈페이지 유입량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자사 신문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포해 최대한 사용자를 묶어 두려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리소스 낭비로 컴퓨터 속도 저하를 일으킬 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등 귀찮게 하는 요소가 있는 서비스인지라 그저 외면받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요즘 시대에 신문 하나 열독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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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쓰는 사람 병역특례시절 차장님밖에 못 봤다, 강제로 설치된 후 지울 줄을 모르는 고로... -_-...

소비자는 매우 효율적이지는 않아도 최소한의 득과 실은 구분할 줄 압니다. 그들은 자신을 편리하게 해 줄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언제든지 옮겨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신문사들이 조선일보처럼 신기술을 활용해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그저 동일 컨텐츠를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옮긴다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좋은 컨텐츠가 매우 무의미해 질 수 있습니다. 마치 아무리 머리를 잘 깎는 미장원이라도 그 곳이 너무 멀다면 찾아가지 않듯 말이죠.

조선일보는 이러한 점에서 언제나 발빠르고 영리하게 행동합니다. 동아와 조선도 요 몇년 새 질적으로 상당히 좋아지고 중앙 선데이나 동아 비즈니스 리뷰를 내놓는 등 더 독자 입맛에 맞고 전문성 높은 영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러한 영역에서는 전혀 조선에 미치지 못합니다. 가난한 참언론들은 질적 차이가 점점 드러나며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고요. 하지만 소비자 친화적이라는 측면은 자본보다는 배려가 중시되는 부분입니다. 얼마든지 재벌 언론과 경쟁해 나갈 수 있는 것이죠. 이가 돌파구라고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영향력을 확대할 발판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미디어는 전혀 몰락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스스로 몰락의 길을 조용히 밟아 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조선일보에게서 그 길을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insight를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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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선배 커뮤니티에 쓴 글이다.

저는 지금 촛불시위가 흥미롭게 보이기는 해도 이후 긍정적 영향을 낳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광우병 사태'는 어디까지나 안전문제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문제이니까 지금 이렇듯 폭발적 반응이 가능하지만 실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이익을 해치는'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대개 소수를 조지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렇게 바쁜 세상에서 갑작스레 연대가 일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봅니다.

촛불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낙관적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지금 내 눈 앞에 떠오르는 풍경은 2002 월드컵의 그것이다. 물론 그 지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바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그것이다. 2002 내셔널리즘의 반영으로 비판받았던 수준의 거리 응원을 벗어나 정치적 이슈를 두고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2002년 거리 응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꿈'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 '거리 응원'이 '촛불 시위'로 바뀐 것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솔직한 이야기로 난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난 '거리 응원'에도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촛불 시위'에 낙관적이지도 않다,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솔직히 별 재미 없는) 비유를 하나 해 보자. 원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이번 촛불 시위에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데 월드컵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원래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월드컵에 무진장 기대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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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2 월드컵 이전 한국 프로축구는 좀 안습이었다.

이해가는 일이다. 사실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프로축구도 전두환 선생님의 공로 하에 사람들 관심 돌리려 시작한 것이지만 프로야구가 튼튼한 지역 기반과 고교 야구의 인기를 물려 받으며 이쁘장하게 정착한 데 반해 프로축구는 완전 찬밥이었다. 그 때만 해도 한국 축구 레벨은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고 기본적으로 관심도 별로 없었다. 가장 중요한 지역부터 야구처럼 광역도 아니고 어정쩡한지라 몇몇 팀은 써커스 순회 공연을 했어야 할 정도이니.

월드컵 거리 응원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센세이션이었고 열광적인 환호 속에 선수들은 K-리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축구 팬들이 기대하던 일이 일어났다. 경기장이 관중들로 꽉꽉 메워진 것. 이건 리그 막판은 물론 플레이오프에서도 없었던 일이 아닌가? 여기에 기존 팬들은 감격했지만 그것은 '반짝'이었다. 물론 2007년, 2008년 계속해서 2002년 이상의 관중 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프로축구 표의 상당수가 '무료'임을 감안할 때 '월드컵 거리 응원' 열기가 '축구 열기'로 이어진데는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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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외국 애들은 배 부르고 있다만 이도 '축구'보다는 '민족주의'가 앞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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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민에게도 돌아오는 것은 있었다. 플스방이 소비 폐인 창출을...

이는 '월드컵 거리 응원'이 '축구'보다는 '민족주의'에 기인한 것임을 보여준다. 월드컵 거리 응원은 차라리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조졌던 '야구 월드컵(WBC)'에 더 가까웠다. 물론 월드컵만큼 세계적 축제가 아닌지라 그리 큰 호응을 얻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현재 '촛불 시위'도 '월드컵 거리 응원'과 유사하다고 본다. 분명 시발점은 '광우병' 이었고 확산 계기는 '폭력 진압'이다. 그리고 처음 부분에서 밝혔듯 이는 어디까지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슈'이다. '안전 문제'인 광우병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에 동감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잠재적 폭력'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타 정치 이슈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사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그러한 면이 있기느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그간 상당부분 '배제의 정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자들은 언제나 약자였다. 정규직이기보다 비정규직이었으며 남성이기보다 여성이었으며 수도권이기보다 지방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집단 이기주의'라 부르는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가 이번 촛불 시위를 통해 이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앞서 밝혔듯 이번 촛불 시위는 '월드컵'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했는데 '민족주의'도 '전체주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가진 강한 배타성은 이미 이 글에서 이야기한 걸로 충분하다고 보고.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촛불 시위 역시 배제의 정치를 벗어나게 하지 못함은 물론 그 자신조차도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2071님이 며칠 전 이 부분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어 옮겨 본다. 글은 좋은데 읽기 무지하게 불편하니 그냥 밑에만 읽기를 권한다.

지금 집회는 너무 많은 것을 배척한다. 운동권을 싫어하고 농민 노동자를 싫어하며 지식인을 기피한다. 진중권 같은 류의 사람들은 인기를 끄는 경우이고, 지금 집회에서도 사실 운동권이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며, 결국 회사원들은 노동자 뭐 이런 구도로 보면 모두가 연대하고 있는 셈이지만, 어떤 정형화된 모습의 운동권, 농민, 노동자, 지식인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가 나오기 어렵지 않은가 싶다.

근자의 노동자가 참여한 집회나 지식인이 끼는 연대가 성공한 사례가 없기도 하고 운동권이 담보하는 무수한 안좋은 이미지가 있으며, 노동자 농민의 그 거칠고 무식한 이미지가 시민들에게 거리감을 주고 지식인들의 뭔가 알 수 없거나 따라잡기 어려운 논리들이 컴플렉스를 준다, 는 식의 일반론적인 분석은 지금 하기엔 큰 의미가 없을 듯 싶고, 그보다는 지금 이 집회가 다른 한정된 이슈에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 의문을 집중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생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고. 쇠고기 문제에 심지어 전농이 적극적으로 끼질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 들리는 소식 중 긍정적인 소식이 상당히 많기는 하다. 그 중 반 조중동이야 그렇다치고 무려 경향 구독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소문은 특히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물론 나의 RSS는 조중동이 절반이다만 가장 아끼던 신문인지라 그런지 더 반갑게 들렸다. 허나 이 역시 명박 오빠가 그렇듯 '민의에 거역함'에서 비롯되었다 보아야 한다. 만약 조중동이 광우병 이슈에 있어 국민 편을 들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뻘짓하며 이후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많이 까먹었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낙관할 것은 아니다. 지금의 거리 시위에 대해 김민웅 교수는 무려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현장의 소통방식은 과연 어떤가? 다양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출하고 그 가운데 대중들의 판단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 것들이 합의로 채택된다. 그 답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상황에 따라 정리될 것은 정리되고 새로운 요구와 새로운 대응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와 하고 여기 몰려가고 저기 쏠려가는 군중심리로 인한 움직임은 없다. 그건 각 개인의 주체성이 빈곤할 때나 가능한 사회적 상황이다. <2008세대>의 중심은 다채롭고 주체적이며, 서로 연대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민주적이다.

난 솔직히 말해 이런 시위가 가능한지나 모르겠다. 이건 사실이라기보다는 완전 희망 사항이다. 에릭 홉스봄이 '진정한 두 개의 혁명'이라 일컫는 68혁명조차 이렇지는 않았을 게다.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의견을 언급할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물론 사람들은 제각각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복잡하게 볼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은 '광우병'과 '폭력시위'에 열 받아서, 막말로 이명박이 싫어서 나온 거라고 본다. 이명박이 '축구'가 된 것이다. 시위가 의미 있는만큼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가 축제를 뛰어넘을 수 있냐면 거기에 회의적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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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명박과 축구는 깊은 역사가 있다

'월드컵 거리 응원'이 하나의 축제였듯 이번 시위를 하나의 축제로 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 하지만 축제라면 말 그대로 '놀러 나왔다'는 것이다. 이게 좋게 평가하면 정치와 삶의 접목이고 나도 언제나 정치에 대해 가볍게 다루는 놈인만큼 정치를 가볍게 보며 삶과 접목시킬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놀러 나와서' 정말로 '놀다가만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서 놀 수 있는 것은 시민은 '전체'고 '이명박'이라는 분명한 적이 있기 때문인데 이게 깨지는 순간 '축제'도 '정치'도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즉 남의 이슈에 대해서는 마치 K-리그에 대해서 그러했듯 무관심이 되지 않을까? 그나마 무관심이면 다행이고.

물론 이명박 정부가 여러 뻘짓으로 참여 문화를 돋우고는 있지만 난 얘네들도 그리 바보는 아니라고 본다. 조중동이 점점 자세를 바꾸고 있듯 이들도 기존 정치권이 그러했듯 싸바싸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2071님의 지적대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기조차 힘든 시점에 이른 지금 정부가 싸바싸바를 잘만 시도하고 시간을 끈다면 하나의 축제는 끝나고 다시금 '정치'가 아닌 그 어떤 '컨텐츠'를 기다리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명박은 '쇠고기'나 '폭력 시위' 외에도 '감세'라거나 '민영화' '환율' 등 까일만한 전국민적 이슈가 너무 많은데 이들만이라도 전면에 좀 등장했으면 한다. 이건 비록 '배제의 정치'를 떨칠 것은 아니지만 좌우를 가릴 이슈도 아니고 관심도라도 훨씬 높일 것 같은데 말이다.

ps. 이명박이 선거 지고도 되려 대응 강화에 나섰다고 한다. 왠지 이 글 괜히 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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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수상이 하루는 국회에 나가서 연설하게 되었는데, 손님을 맞이하다가 그만 시간이 늦었다. 그래서 신호를 무시해서라도 예정된 시간 안에 국회에 도착하라고 운전 기사에게 지시하였다. 신호를 무시하고 국회로 가던 도중에, 교통 경찰관이 달려 와서 차를 세웠다. 운전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경찰관에게 이야기하였다.

"수상 각하의 차요. 지금 국회에 가는 길인데, 시간이 늦어서 급히 가는 중이오."

그러나 교통 경찰관은 "수상 각하를 닮긴 닮았는데, 수상인 처칠 경의 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할 리가 없소. 면허증을 내놓고 내일까지 경찰서로 출두하시오."

교통 경찰관은 수상의 차를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하였다. 처칠은 교통 경찰관이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튿날, 처칠은 경시청 총감을 불러서 그 교통 경찰관을 한 계급 특진시켜 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경시청 총감은
"경찰 조직법에 그런 규정이 없어서 특진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명령을 거절하였다. 처칠은 경시청 총감이 규칙을 준수하려는 태도를 보고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여기는 한국...

이승만 : 이 새끼, 빨갱이니까 잡아 가둬.

박정희 : 인혁당 잔당이다, 당장 사형.

전두환 : 삼청교육대 직행.

노태우 : (씹고 그냥 차 몰고 간다)

김영삼 : (다음 날 기자들을 잔뜩 대동하고 경찰서에 가서 경찰관과 사진을 찍는다)

김대중 : (한 시간 동안 설교한다, 짜증나서 풀어 준다)

노무현 :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어 볼까요?

이명박 : (김영삼처럼 하고 싶으나 경찰이 먼저 피한다)

결론 : 아, 또 최규하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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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사랑받는 노무현, 미움 받는 이명박이라는 공식은 아주 기정사실화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머리 속에 이들은 여전히 비슷한 부류로 남아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둘 다 정통 정치인의 길을 걷지 않았음에도 둘 다 정치의 최고 지위에까지 올라섰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예전 방식을 고집하고 있고 그것은 기존 정치 행태와 부딪히는 길이라는 점입니다. 둘 다 정당을 내치고 독선적인 길을 걷고자 하며 기존의 조직 구조를 물려 받는데 인색합니다. 가뜩이나 정당 내 씽크탱크가 약한 한국 정당 구조에서 이는 정치 기반은 물론 정책의 안정성마저도 해치며 결국 이들의 지지율을 끌어내렸죠. 결국 두 대통령은 '정치를 싫어하는' '반정치적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sonnet님의 글을 인용하는 게 빠르겠군요.

시간이 흘러 이윽고 노무현이 퇴임하고 이명박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명박은 '말뚝뽑기' 내지는 anything but Roh를 표방하며 노무현과의 차별화를 강하게 외쳤지만, 이상하게도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지지했던 큰 흐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명박 역시 방향은 좀 달랐지만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강한 반관료 "개혁" 성향을 띄고 있었던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노무현의 반관료성향이 기득권층을 문제시하는 재야 내지는 아웃사이더적 성향에서 온 것이라면, 이명박의 반관료성향은 민간기업이나 자영업자 출신들이 공무원을 보는 전형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공조직은 일도 열심히 안하는 등 민간기업에 비해 말할 수 없이 글러먹었으며, 혹독하게 군살을 빼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강조는 sonnet님 직접)

이처럼 정치를 싫어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이들이 '정치를 모른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현대 사회에서 정치는 상당히 '쇼'의 성격을 가집니다. 즉 '어떠한 정치를 하느냐' 이상으로 '어떠한 정치를 보여 주느냐'가 중요한 사회인 것이죠. 때문에 대통령은 단순히 공식적 지위를 넘어 일종의 '연예인'이자 '얼굴 마담'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관료와 정당을 쳐내는 '반정치적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좀 다르지만 정당 정치를 기초로 하고 복잡한 관료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대통령은 아래 수 많은 조직과 인물을 대표해 심판, 평가를 받는 부분이 대단히 큽니다. 때문에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의 무게는 더욱 막중해지는 것이죠. 연예인 + 연예 기획사 사장 = 대통령...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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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만하고 보아를 믹스하면떡을 치면 이명박이 나옵니다. 진짜에요.

그러나 '대통령'은 '연예인'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연예인은 욕을 먹더라도 팬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에 반해 대통령은 되도록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최고의 위치에 있고 '표밭 장사' 와 '안정성 유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예인만 해도 최고 지위에 오른 연예인은 아이돌 스타가 아닌 한 티비에 너무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영화 배우는 그러한데 너무 쇼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치면 무게감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대통령 역시 되도록이면 아젠다를 생산해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자꾸 꼬리 밟힐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죠. 차라리 확실한 결과물을 하나 내 주는 게 낫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시장' 시절은 성공한 정치인으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명박 재임 시절 서울에 살았으면서도 이명박이 뭘 했는지 잘 모릅니다. 단 두 가지는 분명히 압니다. '청계천'과 '교통 개선'이 그것이죠. 물론 일각의 비판도 받았지만 이 굵직한 족적은 이명박을 대표하는 성과로 자리매김했고 지금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노무현은 '행정 개혁'에서는 다소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어지간히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릅니다. 그가 겪은 두 번의 지지율 반등은 '탄핵'과 '한미 FTA'였고 이 중 족적이라 할 만한 후자는 결국 재임 기간 비준에 실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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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준에 성공했다면 저기 MB가 MH로 바뀌어 있을 듯, 인생 몰라요...

이에 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마 역사상 가장 많은 아젠다를 생산한 대통령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한 사람의 논객이라면 상당히 이름을 떨쳤을 것입니다. 물론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동의하는 사람도 많았을 테고 늘어나는 적들은 되려 그의 명성을 키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계속해서 아젠다를 생산하면 국민들은 되려 불안해 할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어떠한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으면 '무능력'하다는 딱지가 붙기 쉽상이죠. 차라리 집권 여당 시절 개혁안을 강행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한나라당과 타협안을 마련할 뿐이었고 그것은 그의 지지자들조차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죠.

이명박 대통령은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노무현처럼 아젠다를 생산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실행력을 최대한 강조하고자 집권 초기부터 다양한 정책을 펴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정책이 국민들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음에도 이를 밀어 붙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 대통령이 내세우는 정책들은 되도록 '다수의 입맛'에 거슬리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다수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입맛에 거슬릴 경우 피하는 게 좋죠.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는 가능한 일도 아니다보니 대개 소수를 족치는 정책 위주로 나가게 것이고요. 그래도 이러한 정책이 꼭 필요하다면 그 비용이 얼마나 들건 커뮤니케이션에 최대한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토록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던 노무현 정부도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FTA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쇠고기 수입은 노무현 정부가 이미 FTA의 4대 선결 조건으로 받아들인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저 자연히 이어 받은 거죠. 그럼에도 이가 크게 비판받지 않았던 것은 '광우병 괴담'이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FTA라는 대의제 속에 살며시 숨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기에는 FTA에 대한 여론도 과히 좋지 않아 반대가 70%에 달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어마어마한 투자로 이것조차 극복했습니다. 지하철에서까지 FTA 예찬을 하며 세뇌하는데 어느 국민이 배기어 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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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는 어릴 때부터

제가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경제 100일'을 롤 모델로 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를 매우 잘 이해하는 훌륭한 연예인이었습니다. 그가 내세우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욕 먹지 않는 굵직한 정책'이었습니다. 하나회를 쳐내는 일이나 금융실명제, 결국 좋을 것은 없었지만 OECD 가입까지 그가 내세우는 정책은 내실이 어떻든 국민의 환영을 받기에 충분한 정책이었습니다. 비록 정작 내실은 엉망인지라 말년에 다 뽀록나고 말았으나 삼당합당에서부터 보여지는 그의 쇼맨십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커뮤니케이션과 비할 게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수구 세력과 타협만 일삼았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원내 다수 정당도 아니었고 언론의 지원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되도록 조신한 선택을 택합니다. 노무현 정부와 달리 공권력 투입도 대단히 신중하게 행했고요. 좋은 정책은 아니었지만 카드를 통한 인위적 경기 부양도 그의 '연예인'적 기질을 잘 보여 줍니다. 물론 이가 정권 말기에 역시나 뽀록 나며 되려 역효과를 낳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도 고생하게 만들었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적어도 정권 이양은 좀 더 용이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한국 사회 특성상 5년 후에 자기 정당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있어도 분당, 탈당 등이 있었을 것이며 심지어 이 나라가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막 나가는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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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이 있는 한 한반도는 내일 당장 어찌 될지 모릅니다.

저는 '국가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고 여기에는 '대통령의 쇼맨십'이 필수적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 '쇼맨십'에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받쳐 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대중의 수요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쇼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은 미디어와 무관합니다. 요즘 촛불 시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뉴 미디어 시대를 예찬하는데 저는 그 전파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 미디어 시대라 해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국가의 국민이든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국민 다수의 이익에 반하는, 정확히는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을 하고서 국민들이 반발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결정은 되도록 내리지 말든지,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든지 해야 합니다. 과거라고 해서 조중동이 이를 막을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정부가 필요한 것은 국가 손익 계산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입니다. 기본적인 라디오조차 얼마 보급되지 않은 시절 4.19 혁명이 일어났고 모든 언론이 정부의 통제 하에 있었던 시절 5.18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잔머리이고 쇼맨십이라고 해도 저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그 잔머리와 쇼맨십이 먹혀 들어갔음은 적어도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는 것이니까요. 노무현 정부가 남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이미지였다면 이명박 정부는 엠티가서 튀려고 오버하는 이미지라고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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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지구는 결국 그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각국 유명인사들은 거짓말에 대해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럼스펠드 : 사실 이라크에 생화학 무기 없다.

김정일 : 사실 북한보다 못 사는 나라 없다.

부시 : 솔직히 내가 한 말 중에 맞는 말 별로 없다.

힐러리 : 클린턴, 그 개새끼.

홍정욱 : 나 하버드 수석 아니다.

이명박 : BBK 내가 만들었다.

김경준 : 축하는 지랄...

카알라일 : 셰익스피어 가져가라고 해라.

채임벌린 : 사실 이만명까지는 안 된다.

국민들 : 다 알아, 이 뵹신들아... 막판까지 속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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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럼스펠드

럼스펠드 :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

리승환 :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습니다만.

럼스펠드 : 있을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리승환 : ......

9위 김정일

김정일 : 북조선은 지상천국이다.

리승환 :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만...

김정일 : 그건 걔네들 사정이고.

리승환 : ......

8위 부시

너무 많아서 쓰기 힘들다...

7위 클린턴

클린턴 : 르윈스키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리승환 : 이미 정액이 검증되었습니다만...

클린턴 : 오럴 섹스는 섹스가 아니다.

리승환 : ......

6위 힐러리

힐러리 : 클린턴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회를 한 번 더 갖고 싶다.

리승환 : 대통령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힐러리 : 닥쳐.

리승환 : ......

5위 홍정욱

홍정욱 : 보수 기득권의 역풍에 맞서 진보하는 세계의 비전을 제시한 케네디같은 사람이 되겠다.

리승환 : 그런데 왜 한나라당에 들어갔어요?

홍정욱 : 나는 미처 내 의식을 방어할 겨를도 없이 현실과 표면의 극복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명제 앞에 십자군처럼 무릎끓어 복종했다…. 로트레아몽, 아폴리네르, 발레리, 말라르메, 그리고 랭보의 시적 혁명, 뭉크의 처절한 '외침', 그리고 라이더, 르동의 환상… 나는 고전주의 예술의 벽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허물어뜨린 이들의 천재성에 호흡마저 죽이고 감탄했다. 소포클래스와 아우리피네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이미 잊혀졌으며, 쿠르베의 작품 중 '현실주의'란 수식이 들어간 모든 예술은 철저히 부정되었다….나는 마침내 진부한 현실주의의 틀을 벗어나 현대 예술이 제공하는 혁신적인 자유와 도전의 철학으로 내 삶을 정의하려 했었다…., 마리네티의 시와 보치오니의 그림, 그리고 키르히너의 선언과 클레의 그림을 통해 이탈리아와 독일의 미래주의와 표현주의에 관한 간단한 일람을 마친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다이즘(Dadaism)에 빠져 들어갔다…

리승환 : ......

홍정욱 : 결국 보수 기득권의 역풍에 맞서 진보하는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겁니다.

리승환 : .......

4위 이명박

이명박 : BBK는 나랑 관계 없다.

리승환 : 본인 입으로 본인이 만들었다면서요.

이명박 : 제가 원래 말이 좀 말려요.

리승환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이 됩니까?

이명박 : 뭐, 두 달만에 지지율 20%대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데...

리승환 : ......

3위 김경준

김경준 : 그 사람한테 축하한다고 해 주세요.

리승환 : 김경준이 축하한대요.

이명박 : 쌩유

2위 카알라일

카알라일 :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

리승환 : 인도가 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