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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께서 나의 포스팅에 열폭한 나머지 - 마흔 살이 어린 아이 사진이면 충분하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자신의 최측근 행동대원 황씨에게 사주, 본인을 토요일인 오늘도 업무의 늪으로 빠뜨렸다. 돌아오는 길 부르주아 황씨와 고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떡밥찾아 삼만리 인생인 본인은 생각이 슬며시 민노씨네에서 일어났던 논란으로 옮겨갔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주인장은 맥루한은 좆도 모르는고로 생략하고, 그 논쟁(혹은 그 비슷한 거)을 보며 고전의 해석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게 생산적인가 하는 엉뚱한 물음을 떠올렸다. 책, 특히 고전의 해석에 대한 논쟁이 비생산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대개 책에 파묻혀 현실에 대해 검토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맥루한의 말은 A다, B다... 이러한 물음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으나 그보다 A로 해석할 때 현실이 어떻게 해석되고, B로 해석할 때 현실이 어떻게 해석되는가? 그 두 가지 시각 중 한 가지 시각이 완벽하지 않다면 두 가지 시각인 보완관계인가, 대립관계인가? 시각들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다듬어 더 좋은 현실에 대한 해석틀로 삼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면 그 질문이 과연 효과적일까?
역사에서 상당히 긴 시간이 그러했듯 고전을 신주단지 모시듯 대하는 경건한 자세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는 부족하고 서투르더라도 그것을 끊임없이 현실에 투영해 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작업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 무시하기보다, 오히려 지평을 넓혀주는 또 다른 하나의 계기로 받아들여주는 포용성이 있을 때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화계의 맥루한이라 불리우는 스콧 맥클라우드가 맥루한에 미친 학자보다 그의 뜻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을지라도 그보다 맥루한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사이트를 심어 준 이가 있었을까?
성리학이 최한기의 기학까지 받아들여 줄 수 있는 포용성을 갖추었다면 동양철학은 경험주의를 스스로 이루어 낼 기회를 맞이하게 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성서 근본주의가 세상에 가져다 준 이로움은 무엇일까? 오히려 예수야말로 가장 근본주의를 경멸했던 이가 아니었을까?
모든 해석이 유연해져야 하고, 동등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세상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규준은 아닐지언정 존중해 주어야 할 규준 정도는 있다. 그것이 모든 대상을 완벽하게 평가내릴 수는 없을지언정 '더 나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이를 맹신할 필요는 없을지언정 무시하는 것보다는 나은 경우가 꽤 될 것이다. 물론 과학과 달리 인문학의 영역에서 이가 꽤 애매하고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어이 없이 자기 주장만 떠드는 소리가 아닌 한에서야 조금은 귀를 기울여도 좋지 않을까? 읽어 놓고도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책의 anything goes라는 말이 떠오르는 하루다. 아으, 우재엉아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 책이나 좀 해설해달라고 할 셈이었는데...
저 대인배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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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나 제대로 읽고 나서 말하셈." "왜? 책의 명에를 위해서?" // Curious Minds 2009/04/26 23:33 [Delete]

여튼 저넘 어기저기서 많이 흔들고 다니길래 부러웠는데..
나름 고생도 하고 사는 군요..
"마흔 살이 어린 아이 사진이면 충분하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
========
이게 고도의 빠짓이란걸 놓칠뻔했네요. -_-
사실 저는 저 분에 대해서도 스토킹 중입니다, 잃을 것 없는 저만 좋군요...
맥루한은 아마도 미디어 연구에 있어 가장 중대한 비빌 언덕이기 때문에 고전 취급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후기 비트겐슈타인(이하 W)의 그림자 아래 있는듯한 직관을 밀어붙이고 있는 양반이라는.. ㄲㄲ 다만 그놈의 메세지가 통사론적 구조와 의미론적 외연/내포에 모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둔다면, 맥루한은 통사론적 차원에 대해서는 별무관심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W의 '삶의 양식'이란 말에 너무 꽂힌 것인지 오만 것들의 form을 서술하는데 열중하지만 공적인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인지 불분명한 아리까리한 개념들을 남발해가며 자신의 이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W의 또 한가지 축인 공적인 것의 공유 가능성 또는 검증 가능성을 좀 많이 무시하는 듯 하고. 맥루한의 경향성에 더해, 영미 비주류에서 선호하는 철학이 철학계의 전부인 것 처럼 생각하는 경향까지 더해진 일부 미디어 연구는 분석철학쪽에서 강조하는 주제랑 별로 안친한 듯 한데, 그런 경향성은 좀 비판적으로 찔러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요새 듭니다.
아래 부분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곧 있을 만남에서 가르침을 청해야겠군요 _(_ _)_
어쨌든 제 이해범위 하에서, 고전의 해석에 대해 왜 서로 열을 올리며 경쟁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이해라는 것은 스스로 그것을 통해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다른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쪽이 더 생산적이지 않나 싶네요.
이차시각피질이 쪼그라들어 제 기능을 잃는다면 건 다 이 포스팅 때문입니다.
덴, 아윌 수우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