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개기는 가수들은 어디로 간 걸까?사회에 개기는 가수들은 어디로 간 걸까?

Posted at 2008/09/29 22:25 | Posted in 풍기문란 연예부
딸갤의 문화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충용무쌍횽께서 최경태 선생님에 대한 포스팅을 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음란물에 관계된 일이라면 나름 불을 켜는 족속이라 최경태 선생님의 존함은 익히 들어왔으나 충용무쌍횽이 친히 포스팅을 해 주니 이해가 한 층 깊어짐은 물론 크게 느끼는 바가 있군요. 특히 최경태 선생님의 "예술은 끊임 없이 개기는 것, 사회에 끊임 없이 개기는 것"이라는 말씀은 그야말로 속을 후벼 파는 느낌이더군요. 내 비록 못난 블로그를 운영하나 좋은 글 하나 소개하고 끝마치려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회에 개기는 가수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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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전이라고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끔 티비에 이 놈들 얼굴이 비추었습니다. 하다 못해 카우치 자지 노출 사건으로 유명해진 럭스만 해도 무지하게 사회에 개기는 가수였습니다. 박준흠씨의 리뷰를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만 가사 한 줄 한 줄에 혼이 담겨 있는 놈들입니다. 물론 당시 언더 애들을 하나씩 나오게 하는 이상한 추천 제도가 있어 등장한 거지만 이렇게라도 나왔습니다. 이제는 아예  펑크락하는 애들은 보이지도 않고 언더 애들도 얌전한 멜로디에 고운 가사만 보입니다. KBS 뮤직뱅크를 쭉 보니 올해 들어 한 번도 펑크 계열이 출연한 적이 없는 듯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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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놈들의 이런 모습에 반하지 않았다

뭐 제가 모르고 넘어갔을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한두번? 그 정도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겠사옵니까? 더 아쉬운 점은 그나마 가끔 티비에 나오는 애들이 영 배고픈 맛도, 개기는 맛도 없다는 점입니다. 노브레인이나 크라잉넛이 그나마 좀 떠서 가끔 티비에 얼굴 좀 들이미는데 얘네들이 옛날 걔네들 맞나,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말 잘 듣고 배가 불러야 뜰 수 있는지, 뜨다 보니 말 잘 듣고 배가 부르게 된 건지, 아님 순종적이고 배 부른 노래를 내세우며 배고픔과 개김을 퍼뜨리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닭과 달걀 놀이를 하기에는 심심하고 아쉬움만 줍니다.

펑크락이 버로우라면 힙합은 안습입니다. 민가에 아직까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좀 상업성에 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저는 거북이의 '사계'나 MC-sniper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괜찮았습니다. 물론 그 지독하게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는 메시지가 이들을 통해 윤색되면서 본래의 느낌은 많이 퇴색되었음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라도 그 '현실 고발적'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전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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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주머니의 생계를 위한 행동은 열외

그런데 요즘 힙합하는 놈들은 왜 이리도 신나게 살아가는 겁니까? 물론 힙합 자체가 '좆대로 떠드는 것'이지만 이거 너무하잖아요. 좆대로 떠드는 인간들의 메시지는 그저 '여자 먹을래'와 '세상 좋구나, 지화자, 놀아 봅세~' 입니까? 여자들은 '나 비싼 여자야, 남자들아, 깝치지 마~' 하거나 성경에 나오는 뱀마냥 '함 따 먹어 보소' 하며 도발적 가사와 함께 살살 흔들어 대는 게 '좆대로 떠드는 것'입니까? 사실 좆대로 떠들려면 우리 삶에 서러운 게 얼마나 많아요. 뭐 가난하고 못 살고 이런 사람들까지 굳이 갈 것도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놈이 벌써 국민들 주둥아리를 쥐어 틀려고 되먹지도 않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힙합은 형식에서도 그렇습니다. 옛날 초창기 힙합 한다는 애들이 깝칠 때는 좀 어설프고 그래도 나름 개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장르가 다 그렇기는 하지만 힙합은 '원조병'에 걸렸나 하는 느낌마저 납니다. 모두가 미국 스타일과 얼마나 더 닮았나를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한 숨 푹푹입니다. 예인님이 경제적 음악이라는 글에서 전혀 문화계를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번안 문화를 질책한 것도 이와 맞닿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블로그를 쉬고 계신 ozu님은 '꼴에 마초 근성만 배워 왔다'고 비판한 적도 있지요.

예전 검열이라는 되먹지도 않은 놈 때문에 아예 노랫말도 맘대로 적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이 때가 오히려 더 '개기는 가수'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저 멀리 신중현, 한대수 등까지 거슬러 올라 갈 것도 없습니다. 요즘 번역기 돌린 듯한 가사로 노래하는 서태지만 해도 '시대유감'이 사전심의제에 걸리자 그냥 가사 없이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습니다. DJ. D.O.C도 L.I.E 등으로 이래저래 세상을 씹어 댔고요. 그 때는 힙합이 음은 좀 어설퍼도 지금처럼 사랑놀음 뿐 아닌 세상 씹기도 있었고 펑크나 록도 종종 보였습니다. 물론 이런 노래들이 공중파를 탈 일은 거의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음악으로 항의를 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슨 중2병으로 보이는 친구가 옷에 이상한 걸 덕지덕지 달고 나이 들만큼 든 양반이 변증법을 끌어들이는 초딩적 레벨의 가사를 아이돌 가수에게 내밀고서는 사회적 메시지라고 폼 잡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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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깊은 뜻이...!!!

음악은 힘이 셉니다. 제가 얼마 전 어떤 컨텐츠가 살아남을까? 라는 글에서 감각성, 서사성, 인격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음악은 이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합니다. 태생적으로 감각적이며 그 안에 가사는 하나의 서사성을 지니고 가수가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싱크로하려는 의지가 있는 이상 인격성 역시 살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강한 힘은 어느 새 기존의 틀을 깨 더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보다 기존 사회를 유지하는 데 봉사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연예인은 사회를 리드하는 계층입니다. 정치인들은 무슨 개소리를 하든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이 놈들이 사회를 계몽할 이유도 없고 그런 사회는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거대 기획사의 가수 외에는 그저 롱테일로 밀려나는 한국의 음악계는 사회 비판적인 음악이 주류 편입하고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영미 음악계와 참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물론 시장의 크기도 있기는 합니다. 역사도 짧고요. 그런데 시장은 예전보다 더 커졌고 역사는 길어졌는데 대체 왜 이렇게 흐른단 말입니까? 그저 구석에만 찌그러져 있을 그들을 그리워하며 티비와 PC, 그리고 우리를 지배하는 누군가들에게 최경태 선생님 다큐멘터리를 한 번 보여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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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저같은 무지랭이보다 언제 너바나나님이나 민노씨, foog사마가 이에 대해 다루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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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콘이 정말 시대착오적인 것은 //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2008/09/30 08:56 [Delete]
  2. 펑크학 입문 : Punk Generation 101 // Mųźёноliс Archives. 2008/09/30 13:06 [Delete]
  1. intherye
    저도 얼마 전 뻥삼이를 다시 들으면서 아쉽게 느꼈던 점입니다..
  2. 이뉴
    ...전 이 글을 보면서 왜 카시오페아의 공습이 두려운 걸까요? 후.. :(

    제가 보기엔 이건 SM의 영향이 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태지 이후에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가수가 없던 그 시절에 HOT로 이 영역을 차지하면서, 이 반사회적인 이미지도 잘만 포장하면 '상품'이 되어버린다는 전례를 만들어 준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이거 기회 있으면 포스팅 좀 해보고 싶은데, 요즘 원서 쓰기에 바빠서;;
    • 2008/09/30 15:52 [Edit/Del]
      오면 뭐 별 수 있습니까, 문 닫아야죠 -_- (소심...)

      HOT가 확실히 영향을 준 게 얘네들은 이상한 메시지 들고 나오고 심의에서 뭐라고 하면 무조건 준수하는 신기한 방향을 채택했거든요. 저는 원서를 몇 장 안 써서 무지 한가합니다. 2학년 이후 이렇게 여유 있는 나날은 처음인 듯 -_-;;;
  3. 음악이란 매체는 기타 다른 표현방식보다 훨씬더 동시대 대중들의 기호와 정서를 민감하게 반영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사회에 개기는 가수들이 사라진게 아니라 이제 개기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런데 저 식염수향이 물큰 피어오르는 젖가슴과 게다리춤을 과시하고있는 아줌마도 힙합하는 사람입니까?
    • 2008/09/30 15:54 [Edit/Del]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언제나 '청중이 곧 컨텐츠'임을 강조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인데 음악의 메시지는 특히나 시류에 빠르게 반응하는 듯 합니다. 그래도 대자본에 잠식된 현재의 모습은 좀 아쉽기는 하군요.

      저 아주머니는 미스 월드컵입니다. 노래는 안 들어봤는데 힙합이라 우기더군요(...)
  4. 그리고 게기더라도 의미가 있게 게겼으면 좋겠습니다. 포장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 눈에 힘주고 선생이 하는 말 안듣는게 게기는 것의 전부라 생각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 '오정반합'이라는 건 정말 웃음이 나오네요. 철학이라는 것이 굳이 꼰대들의 전유물이 될 필요야 없겠지만, 동방신기가 춤을 추며 한명씩 나와 정반합의 원리를 말한다... ㅡ.ㅡ 차라리 그냥 생긴데로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 2008/09/30 15:55 [Edit/Del]
      확실히 요즘 겉멋은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은 좀 풋풋한 맛이었다면 요즘은 개폼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든다고 할까요? 가끔 어린 연예인들을 봐도 그런 느낌이 좀 나고요...
  5. BeLL
    왠지 '혁명을 팝니다'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6. O정반합!!! ㅋㅋㅋㅋ 저런 유머를 진지하게 하다니.. ^^
  7. 정말 파워풀한 퍼포먼스의 절정이군요!!
    대한민국에도 저런 뮤지션이 있었다니
    문장이 환상적인 아카펠라 자체입니다.
    O 정반합 아름다운 청년들이군요.ㅋㅋ
  8. 역시 개기는게 있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죠. 요즈에는 개기지 못하도록 아예 돈이라는것을 너무 강조해놓은것 같습니다. 모두들 개기기전에 돈에 굴복해 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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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5단계논쟁의 5단계

Posted at 2008/03/27 17:55 | Posted in 수령님 사상전집

SuJae님의 글 '사람답게 살고, 인터넷하고, 댓글 달자'을 보고 문득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의 논쟁 단계를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실 넘쳐나는 사람들의 논쟁을 단계별로 분류함은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제 경험에 의거해 볼 때는 대충 들어맞지 않을까 합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 정념(情念)의 단계
말 그대로 상대방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감정에 근거해서 이야기합니다. 물론 감정적인 부분도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중요한 부분이겠으나 이가 우선해버리면 아예 경청이 불가능하기에 절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습니다. 누구나 이가 잘못되었음은 알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2단계 : 변증(辨證
)의 단계
상대방의 전체 논지를 바라보기보다 부분적인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문제 지적은 언제나 유의미하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맥락과 유리되어서는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논지 이탈마저 낳기 쉽습니다.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모든 주장은 일정의 오류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어떠한 대안을 낳으려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대개 지식과시욕이 강한 이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단계 : 투아(投我)의 단계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내세웁니다. 언제나 그렇듯 비판은 쉽지만 작은 대안 제시는 물론 의견 개진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 단계에 이르르면 적어도 비생산적인 논쟁은 사라집니다.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 중 무엇이 더 나은지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도 변증법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되는 등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

4단계 : 수용(受容)의 단계
기본적으로 3단계와 비슷하지만 자기 의견 개진을 넘어 상대방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inuit님의
경청의 3단계에서 open to your mind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5단계 : 소쟁(消爭)의 단계
제가 생각하는 논쟁에서의 최고 단계로 '論爭'에서 '論'만 남으며 '爭' 자체를 무화시킵니다. '누구의 의견이 옳은가'에서 '주어'가 사라지며 오직 '올바름'만이 남습니다. 엄연히 論과 爭으로 구성된 개념에서 절반을 때어낸다는 게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가능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겠으나 일단 한 번 누군가를 통해 경험하면 이후 논쟁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만큼 마법과 같은 단계입니다.

어느 단계든 분명한 점은 이들 단계간의 차이가 어떠한 '기술'이나 '능력'에 의겨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격'과 '품성'에 의거한다는 점입니다. 2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청과 감정 자제가 필요하고 3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걸고자 하는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4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포용력과 상대 존중이 필요하며 마지막 5단계를 위해서는 양 쪽 모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풍요의 심리는 물론 상대방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겸허함'이 있어야만 가능한 단계입니다.

사실 각 단계는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글로 옮겨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한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자신을 둘러 싼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넓어질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단계에 서 있습니까?

결론 : 걍 술로 풀자논쟁의 최고수는 나경원,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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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청의 3단계 // Inuit Blogged 2008/03/30 23:53 [Delete]
  3. 한국형 논쟁의 5단계 // 현실창조공간 2010/01/29 15:08 [Delete]
  1. 너바나나
    오크 여사 무시하시나요?
  2. 어떤 단계냐구요?
    상대에 따라서 단계가 바뀌니 1단계도 5단계도 될 수 있겠네요. 아리따운 여성분에게 대하는 것과 극렬마초(마초를 비하하는게 아닙니다.), 꼴통페미(역시 페미니스트를 비하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꼴통페미는 따로 존재합니다.)와 대화를 나눌때 논쟁의 정도가 달라질 뿐더러 상대에 따라 감정개입의 정도도 달라지니 분명 단계는 오르내리락하겠죠..

    역시 이런 글 보면 너무 재밌습니다. 이 맛에 승환님 블로그 들어옵니다.ㅋㅋ
    • 2008/03/30 16:33 [Edit/Del]
      상대에 따라 단계가 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경우에는 아예 안 되겠다 싶으면 말을 않고 조용히 피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반대로 자신이 좋은 상대가 된다면 상대방 역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말은 고맙게 받아먹겠습니다 ^^
  3. 오홋, 대단하시네요.

    rss로만 구독하는 유령블로거가 댓글을 남기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네요.

    중국에 계셔서 그런지 한자글도 많은 것도 같구.. ^-^
  4.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사람들이 저하고 말이 안통한다고 하는게 저의 인격과 품성 때문이었던거군요. 크흑.
    근데 저도 아리따운 여성과 대화할때는 급 5단계화 얍삽함을 보입니다.
    • 2008/03/30 16:40 [Edit/Del]
      김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찔리기 그지 없군요... 저는 상대에 따라 의도적으로 1단계를 취하기도 합니다. -_-
  5. 아, 좋은 글입니다. -_- 근데 인터넷이 뭐죠?
  6. OK목장
    저의 경우는 욕먹는 게 두려워 아예 자기의견을 안 내려고 하죠..
  7. 무아무쟁의 단계.
    나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생성하는 단계. 언듯보기에는 매우 이상적인 모습 같으나, 끊임없는 논쟁꺼리를 만들면서도 싸우지 아니하고, 밤새 키보드를 두드리는 절대 폐인의 단계.
    내가 없고 너도 없으니 아무런 이익이 없고, 다만 헛된 지식으로 밥 굶기 딱 좋은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이승환님의 5단계 어느 사이에도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8. 전 엄마랑 대화할 때 항상 정념의 단계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고 깨닫게 되었네요. 1단계 aka 말싸움이라고 해석해도 되나요? -_-;
    수령님의 흥미로운 글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슴니다. 이상 유령구독자였습니다.
  9. 형님 퍼가도 괜찮겠죠?
  10. 준석
    허허 좋은 글 읽어서 기분이 좋네요. 염치 불구하고 출처밝히고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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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에 어서오세요NHK에 어서오세요

Posted at 2007/09/03 00:49 | Posted in 야동후후식 영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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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원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애니메이션으로 봤습니다. 동네 만화방에서 어떤 놈이 1권을 빌려갔는지 도저히 반납할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그걸 독촉 안 하는 주인 도 참... '하레와 구우'마냥 사실상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거나 '박살천사 도코로짱'처럼 무진장 짧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한 TV 애니메이션을 본 게 몇 년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사실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히키고모리(은둔형 폐인)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인데요. 사실 이 부분에서는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작가가 히키고모리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여주인공이 가진 생각을 돋보이려 하기 위해서이지, 히키고모리라는 특정 계층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인 것 같지는 않거든요. 히키고모리라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동은 그다지 히키고모리답지 않습니다. 별로 일관성도 않고요. 후반부에 이를 수습하기 위해 '후배와 함께 있으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등 주인공의 독백을 넣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어요. (물론 제게 한 방을 먹인
아녀자만 하겠냐만)

흐름 뿐만 아니라 히키고모리의 삶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거나 이해하려 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꼭 소수자의 시각을 대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결여되었다는 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의식주가 충족되면 그 짓도 못 한다는 식의 생각을 볼 때 (심지어 해결방식은) 작가의 시선은 교과서를 뛰어넘지 못함이 잘 드러납니다. 매력적인 소재를 단지 메세지를 살리기 위한 방식이나 개그의 소재로 삼은 것에는 아쉬움이 큽니다.

뭐, 이렇게 말은 했지만 소문이 헛소문이 아닌지라 꽤나 재미있어서 폐인마냥 쉴새 없이 보았습니다. 등장하는 주연급 네 명은 모두 뭔가 정신적인 문제, 혹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뭐, 이런 인물이 중심이 되는 애니메이션이 없지야 않지만 특이한 점은 이들간의 관계, 그리고 얘네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입니다. 이들은 충고라는 이름 하에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으며 상대방의 폐부를 찌릅니다. 약점이 뚜렷한 상대방이 그럴듯한 (때로는 당연한) 논리로 둘러쌓여 있는 그러한 논리를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때로는 입을 닫고 괴로워하거나 때로는 함께 도취되지만 결국 부정하지는 못하죠.

그러나 사실 그러한 말들은 모두 화자 자신과 무관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자신이 내놓은 말들은 결국 자신이 현실에서 상처입은 것을 보호하기 위한 교묘한 논리이거나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킬 경우 자승자박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들이죠. 그럼에도 스스로는 그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채, 혹은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기모순인 말들을 내뱉는 것이죠. 결국 이런 말들은 자기자신을 긁어대는 말에 불과하죠.

주인공 사토와 여주인공 미사키의 관계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요. 여주인공 미사키는 뜬금없이 주인공 사토를 히키고모리에서 탈출시켜주겠다고 나서지만 사실 구원받고 싶어하는 쪽은 도리어 자신입니다. 결국 사토가 히키고모리 탈출을 위해 미사키를 원하는 게 아니라 미사키가 자기 존재 의의를 보장받기 위해 사토를 원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사토가 히키고모리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토는 이미 '미사키의 사토'가 아니니까요. 결국 미사키는 '사토를 도와주어야 한다'와 '사토를 히키고모리인 채로 놔 두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갈등하고 이는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날만큼) 몰아넣어 버리죠.

이러한 구성은 마치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렇게 극적인 (좋지 않은 표현으로 정신병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현실에도 이런 관계는 쉽사리 눈에 띱니다. 우리는 쉽사리 타인의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충고하고 가치판단을 내립니다. 무엇은 옳고 또한 무엇은 그르다고 너무나 쉽사리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충고와 판단은 결국 자기 세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쉬움, 자신이 받은 상처에 뒤덮인 충고와 판단은 타인의 세계에 공통 적용될 리가 없거든요. 그럼에도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이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불쾌해하죠. 실제로도 남에게 쉽사리 충고하고 판단하는 이들을 보면 자기 삶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토리가 우울하거나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습니다.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상황에 개그를 적절히 잘 끼워넣은 것도 큰 원인이겠으나 기본적으로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 따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충돌하고 오해하고 꼬인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진심으로는 서로를 위하며, 또 그러한 마음을 느끼며 신뢰를 키웁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따뜻한 결말로 나아갑니다. 이러다보니 좀 뜬금없는 흐름이나 인물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물론 현실과도 좀 동떨어져 보인다는 문제는 있지만 우울한 소재를 가지고서 굳이 우울한 스토리로 나갈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저같이 밝은 사람은 그런 거 싫어요.

어쨌든 보면서 반성이 되던 게 사실 저도 나이가 들수록 그럴듯한 충고나 논리가 늘더라고요. 이 블로그만 해도 그렇고요. 다 제 한이 쌓여 나온 꼬이고 꼬인 헛소리일 가능성이 99%에요, 다들 알아서 필터링하리라 믿습니다. 아, 덤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엔딩곡을 듣기 위해서라도 꼭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귀찮아서 엔딩곡만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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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맨스랜드  (6) 200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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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 1등이다!! 이렇게 장문의 감상문을 쓰신걸 보면 정말 재밌나봅니다. (하긴 이승환님은 맨날 장문을 쓰시지..후후후) 히키고모리는 잘 모르지만, 집에서 하루종일 와우만 하는 그런 사람 -_-?을 상상하면 되겠군염. 왠지 슬퍼지는군요.
  2. 프리스티
    원래 원작이 소설입니다. 만화는 1권만 보고 애니메이션은 못봐서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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