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4/24 원효대사의 설법과 유명인들의 반응 (22)
  2. 2007/10/04 디빠의 거울 (12)
  3. 2007/08/17 디 워 - 세계 영화사에 혁명을 일으킬 (18)
  4. 2007/08/10 디워와 평론가, 그리고 옹호자 (6)

"원효대사의 설법과 유명인들의 반응"

자다가 깨어나 바가지에 담긴 물을 시원하게 원샷했다고 생각한 원효. 아침에 해골 속의 썩은 물을 발견한다.

원효 : 아니, 내가 어제 마신 이 물이 썩은 물이었단 말인가? 우욱... 우욱...
의상 : 스님, 왜 이러십니까?

잠시 마음을 추스리던 원효는 말한다.

원효 : 스님, 저는 당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의상 : 아니,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원효 : 저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불법은 당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의상 : 그럼... 스님,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원효 : 네, 무엇인지요?
의상 : 사실 저, 어제 그 해골에 소변+대변을 눴습니다.
원효 : ......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이 감동적인 설법을 유명 인사들이 듣고 성명을 발표하는데...

이승만 : 반공인지 애국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박정희 : 독재인지 민주정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전두환 : 학살인지 국가 안정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노태우 : 뇌물인지 기부금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김영삼 : 외환위기인지 도약의 기회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김대중 : 신용카드인지 교통카드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노무현 : 좌파인지 우파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이명박 : 운하인지 나루터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오세훈 : 뉴타운인지 달동네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홍정욱 : 7막7장인지 막장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방상훈 : 정론인지 찌라시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정몽준 : 성추행인지 애정표현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조준웅 : 특검인지 방위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황우석 : 복제 줄기세포인지 주워 온 줄기세포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심상정 : 밖이 추운지 더운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심형래 : 세계적인 영화인지 삼류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토오티 :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다.
이천수 :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자 꼬실 수 있다.

이승환 : 왕따인지 외길 사나이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결론 : 이제 사람 이름도 기억 안 나...
이 블로그가 건전 블로그인지 막장 블로그인지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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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빠의 거울"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디워 현상'이라는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매스컴과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심형래의 피해자 마케팅은 보기 좋지 않았으며 알아서들 신도가 된 수많은 군중, 이른바 '디빠'라 불리는 이들도 보기 좋지 않았다. 여기에 많은 심형래 비판자, 소위 '디까'들이 일어났다. 나는 이들의 위치를 동등하게 놓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라 생각한다. 디빠라는 인간이 워낙 많다보니 소위 무조건적인 '디까'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이들은 '디빠'의 감정적 반응에 대한 방어적인 측면이 있었으며 어느 정도 논리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논리가 중요하지 않은 인터넷 논쟁에서 수가 안 되는 디까들은 아주 혼이 났고 덕택에 더욱 감정적으로 몰아세워진 감이 없지 않다.

디워의 결과에 대해 언급하자면 디빠들이 무슨 소리로 변명하든 디워는 시장에서 무참하게 실패했다. 이에 대해 디빠들이 어느 정도 수그러든 것은 미국 시장 개봉 이후이다. 여러 팩트들이 이미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고 굳이 이를 접하지 않은 이라고 해도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미국에서의 차가운 혹평, 예상 이상으로 급속도로 떨어진 극장 수입만으로도 디워의 수입 실적을 언급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제 옹호라고 해도 그 결과에 대한 것보다는 심형래의 의지나 애국주의에 근거한 옹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황우석 때마냥 아직까지도 그것을 우기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터넷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보이고 있다. 디빠가 했던 일을 디까가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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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수잔나님이 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리뷰에서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브레히트가 노래했듯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

굳이 브레히트를 인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사실은 상당한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정치권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며 중앙으로 진출한 이들은 전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다. 블로거들 사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유시민만 해도 그렇다. 물론 비단 말빨 뿐 아니라 그의 능력에 있어서는 큰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그토록 부르외치던 그는 개혁당을 중앙정치 진출의 발판으로 사용하며 형식적 민주주의를 악용했고 한미FTA에 앞장서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서도 멀어져 갔다. 그런 그는 이상한 의리를 외치며 친노라는 이름의 결집을 외친다. 문제는 다른 정치인이라고 유시민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 세련미에서는 오히려 비교도 안 되게 떨어진다.

디까나, 디빠나 한통속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디빠들을 그토록 비판하던 그들, 그들에게 과연 비판하고 싶었던 대상은 무엇이었으며 지금의 비판 아닌 비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들이 이 질문에 떳떳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디까들의 모습은 대체 예전 디빠와 어디서 어느만큼 다른 것일까? 나는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디빠가 비판받은 것은 그들의 논리성의 결여보다 태도의 문제에서 야기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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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워 - 세계 영화사에 혁명을 일으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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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스팅의 여파로 트랙백이 초과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나도 (쉬레기) 파워 블로거다, 하면서 좋아하는 이 와중에 wendy님께서는 답글을 달지 못하고 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다시금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제부터 이 블로그는 독서와 영화 블로그입니다. AV만 보면 좋아요, 하는 블로거분들은 죄송하지만 피드 잘라주세요.

어쨌든 각설하고 디 워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아,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그리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 충격을 중 영화는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국 영화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쇼크이자 혁명이네요. 사실 영화들이 소재가 다르고 주제가 다르다 해도 플롯, 서사 어쩌고 하는 이야기 짜임새는 다들 비슷합니다. 그냥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이런 중학교에서 지겹도록 배우는 것에 그럴 듯한 설득력 있는 장치를 넣는 거죠.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램 중에서도 등장인물 설정하면 대충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게 거의 티비 드라마랑 맞아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워는 이런 매너리즘을 아주 속 시원하게 날립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입을 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명색이 방송기자라는 주인공부터 사고수준이 거의 초딩급입니다. 요즘 언론고시 힘들다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문제는 주인공만 초딩사고면 정신병원을 가야 하기에 스토리 전개가 안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심감독은 과감한 수를 씁니다. 바로 나머지 인간들의 사고도 모두 초딩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 버리면 이 멍청한 놈들이 이무기에게 바로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또 멋진 해결책, 이무기와 그 꼬봉들까지 IQ 두 자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정말 여기 이무기와 꼬봉들이 하는 짓을 보면 마징가의 아수라남작과 헬박사는 희대의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러다보니 스토리의 전개는 거의 정신이 없습니다. 쟤 왜 저래, 하고 있는 순간 상대방도 거기에 맞는 대응을 해 줍니다. 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생각을 하다보면 또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이전의 일은 어느 새 잊혀집니다. 이게 참 신기한 것이 이런 현상이 누적되다 보면 이런 전개가 받아들여질만도 한데 끝까지 이해가 안 되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아무리 스토리가 허접한 영화라도 한두번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기 마련인데 한 번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공 죽든말든, 이무기 쇼하든 말든 하는 기분이 이어지더군요. 마치 이방인의 뫼르소가 된 기분이랄까요? 분명히 말도 안 되고 설명이 안 되는데 영화는 잘잘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 이거 진짜 말로 설명하기 힘드네요.

CG가 좋다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고들 그러는데 저라고 뭐 스토리 기대하고 보러 갔겠습니까? 그냥 예매권 생겨서 간 거지.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이 어마어마한 전개가 CG를 눈에 들어오지 않게 할 정도입니다. 심형래가 엔딩에 아리랑과 함께 영상편지를 올리는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늘 흥분된다. 하지만 도전에는 책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정말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 너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 보면서 많은 반성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되어야 할, 혹은 이렇게 해야만 할 당위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다 인간 맘대로 정해놓고 그렇다고 착각하는 거지. 어쨌든 쇼킹한 스토리와 정신없는 전개에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비꼬는 게 아니고 정말 그렇더군요. 저는 원래 어이없고 깨는 거 좀 좋아하거든요. 제 생각에 디워빠건 디워까건 그냥 무조건 보세요. 일단 한 번 보고나면 술안주로 삼기에는 최고입니다.

끝으로 진중권에 대해  언급하면 이 양반 원래 말을 굉장히 도발적으로 하기는 합니다. 또 강준만과 논쟁 때도 그랬듯이 가끔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만 자신은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논리를 갖다 붙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양반 정도면 별로 스노비즘에 빠지는 편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언급한 것으로 좀 오해받고 있는데 이 양반만큼 약간의 학문으로 적절한 설명을 하는 이들은 드물어요. 또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꽤 냉정하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사실 논쟁에 몸을 드러내는 지식인들은 자기가 옹호하는 계층에 주화입마하는 일이 꽤 많아요. 유시민이 노빠가 된다거나 (물론 강준만이 진중권보다 이룬 게 훨씬 많은 훌륭한 사람이지만) 강준만이 민주당빠가 되는 건 그 대표적 예죠. 심지어는 변희재처럼 기회주의자가 되어서 짖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도 진중권은 예전부터 자기 포지션이 비교적 흔들림 없으며 자기가 옹호하는 세력이라고 무조건 좋다고 하는 양반도 아닙니다. 뭐 디워 옹호하는 분들은 갑자기 변희재 좋아라 하지만 이 양반 걸어온 길 보면 아주 기가 찰 겁니다. 브레이크뉴스 초반까지는 괜찮았는데, 끌끌...

정리

평론가 : 디워 스토리는 거의 평론할 가치도 없지 않습니까?
리승환 : 그대 말이 맞소.
네티즌 : 디워 재미있지 않습니까?
리승환 : 그대 말도 맞소.

한 마디로 싸울 이유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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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와 평론가, 그리고 옹호자"

이번 디워를 통해 평론가가 권위실추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며 개나소나 영화평론을 그어대니까 돈 받고 쓰는 전문가와 시간이 남아돌아 쓰는 저같은 나부랭이들의 영역이 애매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전문가들 평론이 안 먹힌다고 권위실추 어쩌고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평론가들 입장에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왜냐고요? 원래 사람들은 평론가라는 양반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거든요. 대개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을 지켜 보세요. 이 사람들이 평론가 평을 주의깊게 읽고 영화보러 간답니까? 아마도 개봉 전부터 '이 영화 봐야지'라는 마음을 먹거나 언론에서 떠들어대니까 보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이 사람들이 잘났다, 못났다를 떠나서 이게 사실이에요.

사람들이 이처럼 평론가를 신경쓰지 않는 것은 이들이 영화의 기법, 철학, 관련작, 필모그래피 등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그 영화가 재미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발행부수를 신경써야 하고 경쟁매체(단순히 영화만이 아닌)가 많아지며 점점 이 부분에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만 영화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분들과 일반인들의 시각 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그러다보니 그저 재미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평론가들은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고 오히려 사람들은 네이버나 맥스무비 별점을 더 신경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디워 논쟁은 오히려 평론가로부터 관심이 멀어졌던 일반인들에게 평론가의 존재를 간만에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이나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중요한 점은 평론가에 대한 이런 무관심이 디워 논쟁과 마주쳤을 때의 모습입니다. 많은 이들이 디워 논쟁을 두고 평론가를 공격합니다. 높은 곳에서 이론적 분석만을 일삼으며 정작 그 영화의 노림수나 사회적 의미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이죠. 이들의 의견이 옳건 그르건을 떠나 이러한 모습은 제게 참 특이하게 비춰집니다. 왜냐하면 평론가들이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요. 특히 민족주의를 끌어들인 영화이며 내용이 부족하다고 비판받은 영화만도 여럿이 떠오릅니다. '한반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빅히트 영화도 이러한 비판을 받은 대표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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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들 영화에 대한 비평에 대해 찬반양론이 갈리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무서울 정도의 비판에의 반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보는데 뭐 어떠냐, 민족주의 좀 내세우면 어떠냐, 이런 식으로 자기들 보고 싶은 것 보는 분위기였거든요. 이에 반해 디워의 경우 옹호논리를 강력하게 내세웁니다. 스토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헐리우드는 다를 바 있냐, 한국이 이 정도의 CG를 내는 게 어디냐, 이러한 논리의 덧글은 디워에 대한 비판글을 완전히 잠식해 버립니다. 특히 타 영화 논쟁과의 차이는 타 영화에 대한 비판의 경우 그 비판을 수용하고 자기 논리를 내세우며 적당히 넘어가는 반면 디워의 경우는 디워에 대한 비판들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즉 디워가 훌륭한 영화임을, 혹은 (최소한의 의미로라도) 성공작임을 주장하고자 한다는 점이죠.

이러한 점에서 디워는 평범한 관객을 가진 타 영화보다 차라리 많은 팬층을 가진 아이돌 가수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황우석과의 비교도 있던데 사실 황우석에 대한 지지도 그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려고 했다는 측면에서 아이돌 가수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제가 볼 때 문제는 디워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졌는가도 아니고 마케팅 방식이 문제도 아닙니다. 좋은 영화도, 나쁜 영화도 있으며 사람들마다 관점이 다르기에 섣불리 어떻게 결론을 내리기도 힘듭니다. 또 개봉전 다양한 마케팅으로 이미 그 영화에 대한 기대심리와 로열티를 확보했다면 그것도 나름의 기술이고요. 사실 헐리우드 영화라고 뭐 크게 다르겠습니까, 오히려 미국만세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따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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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디워 옹호자들이 비판에 대해 원천적으로 거부하거나 혹은 그 영화를 인정받고자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영화는 훌륭한 영화다' 혹은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라는 목적론적 사고에 얽매어서는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집니다. 상대방이 영화의 한 부분을 공격할 때 그것을 영화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논의 과정보다 자기 결론을 내세우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생산적인 논의는 그 과정에 있지, 단순히 결과를 내세우는 데에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이들에 대한 반감, 혹은 원초적인 반감을 가진 소위 '디워까'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논리성을 떠나 쪽수에서부터 비교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디워 논쟁이 생산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영화를 보신 분들도 즐기려고 본 거지, 집착하려 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데...

ps. 다 쓰고나니 저도 디워 보고 싶네요, 며칠 전에 예매권 생긴 것 남 줬는데 도로 받아와야 하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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