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을 수정하시오"

남자들은 엄청나게 거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서로 비판하며 그 이야기의 폭을 줄여가는 반면 여자들은 사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서로 공감하며 살을 붙여나간다고 합니다. 그 결론은 남자들은 싸움을 하고 여자들은 운다고 하더군요. 남자, 여자 같이 술 먹으면 남자들은 답답해 하고 여자들은 짜증을 내고요. 뭐, 성격 파탄자 사이에서나 일어날 이야기 같지만 대충은 들어맞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자들 대화가 상대적으로 남는 것은 없어도 관계가 돈독해지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비해 남자들 대화는 머리 속에는 뭐 남는 게 있다고 쳐도 저런 식으로 나오면 서로 관계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 경우에는 아예 심각한 충돌의 우려가 있는 대화는 잘 꺼내지 않습니다. 그런다고 남는 게 없으니까요. 얍삽하다면 얍삽하지만 이게 그래도 작은 삶의 지혜인 듯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에서 작정하고 나오면 정말 곤란합니다. 물론 이런 부류 중에서도 상당히 논리적이고 감정동요도 적은 분들도 있지만 대개 이런 부류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려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가장 이야기하기 힘든 부류는 말을 잘 하지 못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부류가 아니라 바로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쪽입니다. 이런 분들과 대화할 때는 대화를 어디로 이어가든 이야기하는 자체가 불편합니다. 나름 말을 살짝 옆으로 돌리려 해도 자기 생각과 조금만 틀어지면 그것은 틀렸다고 규정짓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 정말 난감하죠. 그렇다고 이런 분들이 아주 멍청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적 능력 자체는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한두수 위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자존심도 있고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논박해봐야 시간만 아깝고 하니 그냥 고개 끄덕거리며 GG치고 마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 오지 않는 분 중에는 제 생각이 자기 생각과 같다고 착각하는 분이 꽤 많을 거에요 -_-a

사실 저는 꽤 오픈마인드라 자부합니다. 점점 모두가 표준형 인간으로 수렴된다고 해대지만 결국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가지 삶이 있고 백가지 생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삶과 생각은 모두 부분적인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제 지론입니다. 살아오며 겪은 게 다르고 배운 게 다른 데 하나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를 양산할 뿐이죠. 포퍼가 막스와 플라톤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 이들이 낳은 비극을 이야기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도 감명받은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공감하며 읽었고요. (물론 사람들의 선입견처럼 포퍼가 막스까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칭송하죠) 그런데 자기 생각만 맞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어떻게 그리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자기 생각이 맞다고 생각할 수는 있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맞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남에게 강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파하는 것도 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그런 것도 불가능하면 여기가 북조선이죠, 물론 길에서 저보고 눈이 맑다고 잡는 것은 좀 사절하고 싶지만. 저도 눈이 좀 맑으면 좋기는 하겠다만.

하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대하려면 자기 오류를 전제하고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은 이미 사람이 아닌 거죠. 자기 생각은 무조건 옳다는 것은 남의 생각은 무조건 틀렸다는 것인데 사실 세상이 그리 얕지는 않거든요. 물론 다들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내뱉지만 지식이 곧 진리는 아니며 그 지식의 정당성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차피 현대 학문이라 해봐야 다들 자신들이 연구하고자 하는 방면에서 모델을 활용했으니 일정부분의 추상화를 피할 수 없는데 그것만 가지고 진리라고 하면 그보다 수십, 수백배 많은 것들을 배재한 채 내린 결론일 뿐입니다. 물론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매우 진리에 가까울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 부분과 턱없이 먼 곳에 있을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서로 배척하는 입장을 공격하면서도 정작 상대방에 대해 잘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는데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알고 공격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접근하기는 커녕 폄하하기 바쁘죠. 사실 이 부분은 너무나 책임감 없는 태도라 생각합니다. 결국 자기 맘에 들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말겠다는 신념에 가까움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니까요. 어떠한 입장을 공격, 논박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깊이 파지는 못할지언정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절이라 생각이 듭니다.

제 경우에는 정치적 색채도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편이지만 포지션을 떠나서 남을 설득하려는 게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그리 좋은 행동이라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 주변에도 정치과잉이 좀 많은데 정작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람이 뭐라 떠들든 신경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설득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닫혀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설득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더욱 닫히게 하는 적이 많았고요. 저도 일학년 때 순수한 의도로 학내 언론쪽에 들어갔다가 민족주의만 내세우는 것을 보고 탈퇴한 적도 있고요. 사실 남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것 이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의미없는 입씨름하며 늘어질 시간이 있으면 자신이 추구하는 길로 정말 충실히 살아가면 됩니다. 가장 느리게 보이지만 사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언행일치 속에 자기 삶을 살아가면 주위 사람은 감화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감화가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누구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행위에 침을 뱉을 수는 없죠. 뭐, 자주 일어나지만 그것은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것이고 실제 삶을 접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뭐 저는 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가진 생각이 진리라는 생각만 담보되어 있지 않는다면 제 삶에는 어떤 충고와 비판도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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